기독글

생명의 성숙

글싹천사 2014. 2. 12. 21:21




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


생명의 성숙

 


 

생명의 성숙에는 시간이 필요하다.

젊은 사람은 큰 두뇌를 가지고 있을 뿐 실제적인 성숙에는 이르지 못한다.


성숙은 분량의 확장의 문제이다.

당신의 분량을 넓히기 위해서는 당신의 한계를 넘어서는

고난을 주시도록 하나님께 허락해드려야 한다.


어떤 사람은 오 원을 손해 보는 것은 용납할 수 있겠지만,

천 원을 손해 보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.

어떤 사람은 두세 차례 남을 용서할 수 있지만,

다섯 번째로 남을 용서할 때는 손이 떨리게 된다.


선 과실과 익은 과실의 차이는 그 맛에 있다. 선 것은 시고 떫고 쓰고 딱딱하다.

익은 것은 달고 향기롭다. 마담 귀용은 성숙한 향기를 풍겼으며,

나이 든 사람의 선생이자 어린아이의 친구였다.


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설익은 바나나를 억지로 익히는 방식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

자연히 성장하는 것이다. 인자는 오셔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셨다.

그러나 사람은 먹고 마실 때 그 사람의 참된 상태가 드러난다.


생명은 수양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. 영이 있다면 수양이 필요 없고,

영이 없을 때 사람은 수양하려고 한다.


백합화의 꽃이 피고 나는 새의 깃털이 자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.

그들은 전혀 그러한 것들을 위해 수양할 필요가 없다.

수양하는 것은 단지 세상적인 관념에 따른 "성자"가 되게 할 뿐

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수 없다.


우리는 힘써 열매 맺으려고 할 필요 없이,

다만 소극적인 면에서 십자가의 표시를 지니기만 하면 족하다.

우리가 힘쓰는 것은 다만 생명의 성장을 지연시킬 뿐 생명의 성장과 성숙을 촉진시킬 수 없다.

중요한 것은 환경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안배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이다.

이 안배가 바로 성령의 통제이다.


한 번 하나님의 안배를 피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분량을 한 번 넓힐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.

이렇게 할 때 우리 속에서 생명이 성숙하는 시간이 더 지연되고,

심지어 보충 수업을 거쳐야만이 성숙할 수 있게 된다.

고난을 거칠 때 믿는 이는 결코 전과 같지 않다.

그의 분량이 넓어지거나 그가 강건케 될 것이다.


그러므로 믿는 이는 고난을 당할 때,

생명의 성숙은 바로 성령의 통제하심을 받아들인 총체임을 주의해야 한다.

사람들은 누구의 생명이 성숙했는가만을 볼뿐 그 사람이 여러 해 동안

은밀한 가운데 받아들인, 그에게 가해진 성령의 통제는 보지 못한다.


위트니스 리 

[금세기 신성한 계시의 선견자 워치만 니, p150, 한국복음서원]






 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  정리 : 글싹천사

       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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